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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18~50%가 '꽃뱀 자작극'이라고?

[게릴라칼럼] 강간의 기준을 ‘항거’에서 ‘동의’로 바꿔야 하는 이유 ③

등록|2017.11.29 15:17 수정|2017.11.29 18:51

▲ 성범죄 혐의자들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사례를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 Pixabay


같은 나라에서 산다고 해서 같은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한국에 만연한 '꽃뱀몰이' 집단폭력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뒤 갖게 된 생각이다.

나는 첫 번째 글에서 강간의 허위 신고 가능성이 '사기 교통사고' 비율보다 낮다는 통계수치를 제시했다. 따라서 성폭행 사건 생존자에게 '꽃뱀' 운운하는 것은 교통사고로 실려 온 사람에게 '공갈자해단 아니냐'고 묻는 것보다 몰상식한 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글이 나간 이후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줘 고맙다'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걸쭉한 욕부터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비교적 차분하게 '무지'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반응들을 통해, '꽃뱀론' 추종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경험담'을 꺼내며 나를 (그리고 자신을) 설득하는가 하면, '공식 통계'라며 소수점 이하의 구체적 숫자를 내놓기도 했다.

한 사람은 '경험치로 보면 성범죄 절반은 꽃뱀 자작극'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2014년 성폭력 허위신고가 전체 사건의 18.1%나 된다는 대검찰청 공식자료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18.1%론'은 앞의 '절반'만큼 화끈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인용한 미국연방수사국(FBI)의 2~4%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비율이다.

▲ 지난 10년간의 성범죄 발생 현황.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0% 넘게 증가해, 한국사회의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대검찰청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대검찰청 공식자료'를 계산하면, 한국의 허위신고율은 미국의 2~4%보다 현저히 낮은 0.5% 미만이 된다. 다시 말해, 성범죄 생존자를 '꽃뱀'이라며 2차 폭력을 가할 아무런 근거도, 정당성도 없으면서도 이런 짓들을 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내세우는 엉터리 수치는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꽃뱀 공식통계?

'허위신고 비율이 18.1%'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는 이렇다. 2014년에 성범죄로 고소·고발된 뒤 '무혐의'로 기소되지 않거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비율이 신고된 사람의 18.1%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이므로, '무혐의'와 '무죄'를 더한 비율이 곧 '허위신고율'이자 '꽃뱀 비율'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2년에는 이 비율이 11.7%였으나, 2014년에는 18.1%로 증가했다. 이 변화 가장 큰 이유는 성범죄 기소율이 지속해서 하락해 왔기 때문이다. 꽃뱀론자는 이것을 '꽃뱀 증가추세'의 지표라 굳게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형법에 최소한의 상식이 있다면, 이런 엉터리 주장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성범죄 기소율은 매우 낮다. 게다가 최근에는 더욱 하락해, 2012년에 43.9%, 2014년 42.2%, 2015년에는 35.8%를 기록했고, 2016년 상반기에는 아예 34.5%로 최저치를 갱신했다. 이와 더불어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기소율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 기소율은 2012년에 44.4%였으나, 2016년 상반기에는 33.4%로 대폭 하락했다. 2016년 상반기에 성범죄로 신고된 사람들 가운데 기소유예, 무혐의 등으로 풀려나 재판조차 받지 않는 비율이 성인 성범죄보다 높아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미성년자 꽃뱀 비율이 성인을 추월했다'는 뜻일까?

'무혐의'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무혐의란 신고 후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검찰에 기소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성범죄가 물증을 제시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 의지와 관련된 문제다. 성범죄 기소율이 추락해 온 사태를 두고, 지난해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국에 문제제기를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정부 들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성범죄 대책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기소율이 매년 하락한다면 국민은 '성범죄 수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지는 것 아닌가' 하고 느낄 수밖에 없다"며 "법무부는 성범죄 기소율이 하락하는 이유를 명확히 분석하고, 수사에 소홀함은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일보> 박범계 "성범죄 기소율 5년간 9%P 하락", 2016. 9. 25)

비디오, 음성 기록 있어도 '증거 부족' 무혐의 

성범죄 혐의자들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사례를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별장접대'와 관련해 특수강간 혐의로 입건되었지만, 곧 무혐의로 풀려났다. 사유는 '증거 부족'이었다.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상세히 증언했지만, 검찰은 '여성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거로 제출된 음성기록과 당시 상황이 담긴 비디오까지 있었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검찰은 특수강간뿐 아니라, 접대의 대가성조차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앞에서 '꽃뱀론자' 주장의 허구성을 반박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18.1% 꽃뱀설'의 근거를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수치의 출처는 '대검찰청'의 '공식자료'가 아니라, '보수언론'의 '오보'였다. 이 잘못된 정보는 남성 방문자들이 많은 사이트로 퍼져가면서 헛된 분노와 탄식을 자아내곤 했다.

2013년 9월에 <동아일보>가 '성폭력 무고' 보도를 하면서, 아무 관련도 없는 '무혐의'와 '무죄'를 뒤섞은 기이한 수치를 사용했다. 기자가 '무혐의'의 정확한 뜻을 몰랐던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밖에도 기사 전체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 허위 성범죄 무고를 다룬 2013년의 <동아일보> 기사에 사용된 일러스트레이션. 성범죄 무고와 상관 없는 일반 무고 통계그래프를 그려넣었을 뿐 아니라, 무고 사건과 관계 없는 기소율이나 무혐의 비율 등을 사용해 오해의 여지가 크다. ⓒ 동아일보


예컨대 '성범죄 무고' 이야기를 하면서 성범죄 무고 통계 대신 일반 무고 통계를 인용한다든지,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행범으로 고소당했다' 식의, 일방적 주장을 객관적 사실인 양 진술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불행히도, 한국의 언론은 문제의 '해결책'이라기 보다 '문제' 자체인 경우가 적지 않다.

독재 시절부터 지난 '신권위주의' 정부까지 비민주적 정치 권력을 옹호해 온 것은 물론, 대다수 시민들을 괴롭히는 고용불안, 저임금, 차별 등의 문제 등에서 '힘 있는 자'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 보여 온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범죄자 변명 실어주고, 성폭행은 '몹쓸 짓'으로 

한국의 기성 언론이 '꿀벅지', '김 여사' 따위의 차별적 담론을 열심히 유포해 왔듯, 성범죄를 가해자 시각에서 기술하는 경우도 흔하다.

문제는 이런 보도가 일상화되면 문제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속 3명의 정액" 따위의 '대놓고 몰상식한' 보도는 누구에게나 뭇매를 맞지만, '성폭행' 대신 '몹쓸 짓'이라는 완곡어법을 쓰는 한국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국 언론이 살인, 강도, 방화 등 다른 강력범죄에 '몹쓸 짓'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무의식이 드러난다. 성범죄자의 일방적 변명을 그대로 실어 기정사실로 해 주는 것도 한국 언론의 악습이다.

▲ 성폭력을 '몹쓸짓'으로 표현해 의미를 사소화시키는 것은 한국 언론이 버려야 할 관행이다. ⓒ 구글


여중생 성추행 살인 혐의자(이른바 '어금니 아빠')가 구속되었을 때, 무수한 매체가 '성욕 해소 위해 범행...아내 역할 대신할 대상 찾아'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혐의자 변명을 인용부호도 달지 않고, 그것도 대문짝만하게 제목에 실어준 것이다.

이렇게 언론이 기정사실화해 준 가해자 관점에 따르면, 남성의 성욕은 (여성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해소"해야 하는 것이며(나는 이 주장을 '성욕의 오줌보 이론'이라 부른다), "아내 역할"은 그 '해소자'의 역할이 된다. 이처럼 일그러진 시각을 충실히 실어나르는 것은 왜곡된 여성관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건 자체를 범죄자의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범행까지 '몹쓸 짓'으로 표현한 매체도 있었다. 이런 언론이 '꽃뱀' 언어테러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한국의 허위 신고율은 0.5% 미만

나는 여기서 일부 언론이 유도한 '18.1% 꽃뱀론'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한다. 공식 통계를 이용해 허위신고 비율을 계산하고 싶다면, 성범죄 무고 비율을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2년에 2만 3365건이었고, 2014년에는 2만9863건이었다. 이에 반해, 전국 법원이 판결을 내린 성범죄 관련 무고 사건은 2012년 122건, 2014년에는 148건이었다. 이 비율을 따져 보면, 2012년은 약 0.52%, 2014년은 약 0.49%라는 계산이 나온다.

성범죄 횟수는 늘었지만, 무고 판결 비율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절반'은 고사하고, 18.1%도 아니며, 미국의 추정치 2~4%보다도 현격히 낮은 수치다. 이 결과는 첫 기사에서 '한국의 성폭행 허위 신고율이 미국보다 현저히 낮을 것'으로 예측했던 것과 맞아 떨어진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사회에는 성범죄 피해자를 비난하는 악습이 여전하고, 공권력의 생존자 보호 수준 역시 미국보다 낮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해법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유익하다.

간단하다. 강간 여부를 따질 때 '말로 동의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오해의 여지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를 보호한다. 그러면 '상대가 내게 호감을 지닌 듯 보였다'느니, '집 앞까지 따라와서 동의한 줄 알았다'느니 하는 너저분한 변명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생각해 보라. '나는 동의한 줄 알았는데 상대는 그렇게 생각 안 했으면 어쩌지?' 이런 식이면 불안해서 어떻게 연애를 하겠는가? 그러니 말로 동의를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상대가 말로 동의해야만 동의한 것이다. 그밖의 경우에 성행위를 시도하면 범죄가 된다.

다음 글에서는 캘리포니아 청소년들에게 이 '명시적 동의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관련 기사 연재를 마친 뒤, 정식으로 '명시적 동의 입법화'를 청원할 계획이다. 꽃뱀이 두려운 분들의 많은 성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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